존재의 직관, 피어나는 실존Intuition of Existence, Blossoming Being
안현정 (미술평론가 · 예술철학박사)
Prologue; 어둠 속의 꽃, 직관의 코드
다니엘 신의 회화는 한밤의 산책길에서 마주친 한 송이 꽃으로부터 다시 시작되었다. 불빛조차 닿지 않는 어두운 길 위에서, 누구의 시선도 닿지 않는 자리에서 묵묵히 피어 있는 작은 꽃. 그것은 연약했지만, 동시에 꺼지지 않는 생명력의 표식이었다. 작가는 그 경험 속에서 예술이 무엇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한 근본적 질문에 답을 얻었다. 그는 깨달았다. 예술은 관념이나 이론의 무거운 틀 속에서만 피어나는 것이 아니라, 순간적으로 다가오는 직관적 경험 속에서 진정성을 획득할 수 있다는 것을. 눈앞에 피어난 작은 꽃은 그에게 하나의 상징적 언어가 되었다. 꽃은 보이는 동시에 보이지 않고, 화려한 동시에 곧 시드는 존재다. 그러나 바로 그 모순 속에서 삶은 이어지고, 인간은 견디며, 결국 다시 피어난다. 따라서 다니엘 신의 회화는 단순한 시각적 장식이 아니라, 삶을 직관적으로 긍정하는 미학적 선언이다. 그의 화면에서 꽃은 개인적 체험을 넘어, 불완전한 삶을 살아내는 모든 인간 존재를 위한 은유로 자리 잡는다.
꽃과 직관의 언어, 피어남과 실존의 상징
작가의 작업은 처음부터 꽃으로 시작된 것은 아니다. 초기의 체크 패턴 시리즈는 화면의 구조적 리듬을 실험한 단계였다. 규칙적으로 반복되는 격자는 안정된 틀을 제공하는 동시에, 그 안에서 끊임없는 변주와 유동성을 가능케 했다. 이때부터 작가는 ‘질서와 자유의 긴장’을 탐구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체크는 단지 출발점에 불과했다. 그는 곧 구조적 틀 너머로 생명력을 불어넣는 모티프를 찾아 나섰고, 그 답은 꽃이었다. 꽃은 패턴의 리듬에서 피어난 존재이자, 격자를 뚫고 나오는 생명력의 발현이었다. 그리하여 꽃은 곧 다니엘 신의 작업 세계를 지배하는 핵심 언어가 된다. 특히 시리즈에서 종이는 단순한 재료가 아니라 삶의 은유로 전환된다. 구겨지고 찢기고 다시 붙여진 종이는 인간이 겪는 상처와 불완전성을 닮았다. 그러나 그것들은 모여 하나의 정원이 된다. 정원은 단순한 식물적 풍경이 아니라, 각기 다른 존재들이 어울려 살아가는 공동체적 에너지를 상징한다. 작가는 이를 통해 “약한 개인도 함께할 때 강해진다”는 메시지를 회화적으로 구현한다. 종이가 모여 꽃이 되고, 꽃이 모여 정원이 되듯, 그의 화면은 개별과 전체, 고독과 공존의 역동을 동시에 품는다.
이 지점에서 다니엘 신은 야요이 쿠사마(Yayoi Kusama, 1929~ )의 반복적 점들을 떠올리게 한다. 쿠사마의 점이 강박과 해방의 역설 속에서 무한을 지향한다면, 다니엘 신의 꽃은 불완전성과 긍정의 공존 속에서 피어난다. 또한 데미안 허스트(Damien Hirst, 1965~ )가 나비와 해골을 통해 죽음과 생의 긴장을 전시한 것처럼, 그의 꽃 역시 인간 실존의 이중성을 보여준다. 다만 허스트가 죽음을 직시하는 방식이라면, 신은 삶의 긍정적 에너지를 우선시한다는 점에서 차별적이다. 더 나아가 그의 꽃은 단지 시각적 기호가 아니라, 관객의 기억과 감정이 투사되는 매개체다. 어떤 이는 위로를, 어떤 이는 두려움을, 또 다른 이는 희망을 발견한다. 꽃이 가진 다층적 상징성은 개인의 삶과 서사를 반영하며, 그 앞에서 관객은 자신만의 ‘피어남’을 직관적으로 떠올리게 된다. 이러한 해석은 가스통 바슐라르(Gaston Bachelard, 1884–1962)의 사유와 공명한다. 바슐라르는 『공간의 시학(The Poetics of Space, 1958)』에서 “집이나 정원은 인간의 상상력을 자라게 하는 내적 공간”이라 말했다. 다니엘 신의 꽃과 정원은 단지 식물이 아니라, 관객의 기억과 감정을 수용하는 상상적 창작 공간으로 기능한다.
디지로그적 화면과 공간미학, 감각과 직관의 결합
다니엘 신의 또 다른 특징은 제작 과정에서 드러난다. 그는 스케치, 종이 조각, 디지털 이미지 변환, 그리고 손으로 다시 그려내는 아날로그 회화의 단계를 오가며 작품을 완성한다. 이는 그가 ‘디지로그(digilog)’라 부르는 방식이다. 디지털의 효율성과 아날로그의 감각을 결합한 이 과정은 단순한 기술의 혼합이 아니라, 직관을 매체적으로 확장하는 실험이다. 디지털은 반복과 변형을 용이하게 만들고, 아날로그는 작가의 신체성과 감정을 기록한다. 이 둘의 교차 속에서 작품은 차갑지도, 완전히 따뜻하지도 않은, 독특한 생명력을 획득한다. 이는 단순히 시각적 효과가 아니라, 감각적 직관을 형식적으로 보증하는 방법론이다. 즉, 그의 회화는 테크놀로지와 감각, 효율과 즉흥이 맞닿는 지점에서 성립한다. 이러한 태도는 허버트 바이어(Herbert Bayer, 1900~1985)의 시도를 연상시킨다. 바이어는 바우하우스에서 시각디자인과 회화를 넘나들며, 기능성과 미학을 통합한 작업을 선보였다. 그러나 바이어가 기능적 조형에 머물렀다면, 다니엘 신은 그 위에 오늘의 시대성과 함께 감정과 실존의 무게를 더한다. 그의 화면은 세련된 시각적 언어를 취하면서도, 그 안에 인간 존재의 흔적을 결코 지우지 않는다.
또한 그의 전시는 단순한 작품 배열이 아니라, 하나의 세계관이다. 향기, 색채, 소리, 동선을 통해 관객은 작품을 ‘본다’기보다 ‘체험한다’. 이는 모리스 메를로퐁티(Maurice Merleau-Ponty, 1908~1961)의 『지각의 현상학(Phenomenology of Perception, 1945)』과 맞닿는다. 메를로퐁티는 “세계는 감각을 통해 체현된다.”고 말했다. 다니엘 신의 전시는 관객이 오감(五感)을 통해 존재를 새롭게 인식하도록 만든다. 작가의 공간미학은 세련되면서도 직관적이다. 전시장은 ‘작품을 보여주는 곳’이 아니라, ‘피어나는 감정의 장(場)’이다. 관객은 작품 속 꽃과 함께 피어나며, 그 순간 자신의 삶을 긍정하는 체험을 한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그의 전시가 단지 감각적 즐거움에 머물지 않고, 감각을 통해 삶의 의미를 다시 사유하게 만든다는 점이다. 그리하여 다니엘 신의 회화와 공간은 감각적 직관과 실존적 의미가 교차하는 현대적 예술의 장으로 자리 잡는다.
Epilogue ; 깨달음의 연장선, 피어나는 의미
다니엘 신의 현재 작업은 한밤의 꽃에서 비롯된 깨달음의 연장선에 있다. 꽃은 두려움이자 위로이며, 작은 목소리이자 희망의 증거다. 그는 직관 속에서 삶을 긍정하는 힘을 발견했고, 그 힘을 화면과 공간으로 계속 확장해왔다. 꽃은 불완전하고 서툴지만, 그 속에 깃든 순수함은 현대 사회가 잃어버린 진정성을 되살린다. 정원은 각자의 기억과 감정이 모여 다시 피어나는 자리이며, 불완전함과 순수함이 함께 빛나는 공동의 풍경이다. 앞으로 다니엘 신은 감각적이고 세련된 화면 안에서도 여전히 깊은 생의 의미를 탐구할 것이다. 작품들은 단순한 시각적 쾌감을 넘어, 존재를 직관적으로 긍정하는 철학적 장치로 기능한다. 관객은 다니엘 신의 작품 앞에서 이렇게 되새기게 된다. “삶은 끊임없이 피고 지지만, 그 안에서 다시 피어나는 순간이야말로 존재의 진정한 증거이다.”